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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책, 영화 등)

에너지가 바꾼 세상(2/2), 인류 문명의 역사로부터 배우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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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찾아 떠나는 여행

에너지 흐름이 만들어 내는 것

에너지 문제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다.

각각의 에너지 절약 기술이 사회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면 지식의 축척이

바탕이 된 현대 문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량을 계속해서 늘려 나가야 한다. 하지만 유용한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런 사회는 여러 고대 문명이

그랬듯 언젠가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려면 에너지 문제를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할까.

 

첫 번째는 기술 혁신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순진한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정보통신 기술의 일취월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탓에

어떤 문제든 마지막에는 기술 혁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 착각한다. 에너지를 창조하는 기술

내지는 에너지의 질적 저하를 역전시키는 기술은

전부 실현 불가능하다. 게다가 에너지 절약 기술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일한

기술 혁신 신앙을 버리고 에너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는 첫걸음이다.

 

에너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이는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왜 인류가 에너지 소비량을 증가시켜 왔는가를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늘린 이유를 안다면 줄이는 방법의 힌트도 얻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아는 일, 즉 철학적인 태도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인류는 왜 에너지 소비량을 늘렸을까. 앞에서 살펴보았듯 불의

사용으로 시작된 다섯 차례의 에너지 혁명을 통해

인류는 에너지 소비량을 놀라울 만큼 증가시켰다.

저자는 각각의 과정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키워드는 시간의 단축이다.

 

1차 에너지 혁명이 된 불의 사용은 요리라는 형태로

음식의 제작 시간을 현저히 줄였다. 식사 시간을

극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한 인류는 과거 식사에

할애한 시간을 옷을 짜거나 도구를 만들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차 에너지 혁명인

농경 생활로의 이행은 잉여 식량의 창출로 식량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사회 지배층이나 야금 등 특수

기능을 가진 장인층을 낳았다. 혹독한 농사일을 일부

인력에 집중시키고 나머지 사람이 얻은 자유 시간이

문명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3차 에너지 혁명인 실용적인 증기기관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에너지 대량 소비 사회의 문을 열였다. 광산이나 공장에

설치된 증기기관은 똑같은 시간에 사람이나 소 말의

몇 십 배나 되는 일을 해내는 데다가 지쳤다고

쉬는 법도 없었다. 개량으로 크기가 작아진 증기기관을

교통기관에도 탑재할 수 있게 되면서 증기선,

증기기관차가 등장했고 사람들이 더욱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동력을 가진

교통기관의 등장과 보급으로 사람들의 이동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이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4차 에너지 혁명인 전기 이용은 거리라는

한계를 없앴다. 모스 부호로 유명한 전기통신 기술은

19세기 중반에 고속 정보 전달 수단으로 한 세기를

풍미했고 각 지역의 철도 노선에는 경쟁하듯

전신선이 깔렸다. 전기통신 기술은 이후에도 진화를

거듭하며 컴퓨터와 같은 정보 처리 기술의 발전과

하나가 되어 현재까지도 정보통신 네트워크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인류는 거리의 장벽을 없애고,

직접 가보지 않고도 세계 각지의 정보를 얻고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복잡한 대량 정보까지도

컴퓨터를 이용해 매우 짧은 시간에 처리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 역시 시간 단축과 관련이 있다.

 

5차 에너지 혁명인 인공 비료의 발명은

자연이 정한 질소 공급의 한계를 산산이 깨트렸다.

하버-보슈법의 발명으로 토양의 비옥도를 단시간에

높이는 식량 대량 생산 수단을 손에 넣은 인류는

트랙터와 같은 경작 기계의 도입, 컨트리 엘리베이터라고

불리는 대규모 곡식 저장 시설의 가동 등 차근차근

농업의 공업화를 추진해 생산 효율을 높여나갔다.

이와 더불어 영양가가 높은 옥수수가 싼값에 대량

생산되면서 소고기 등 식육 생산에 드는 시간도

현저히 줄었다. 그 결과 인류가 식량 생산에 소비하는

총 시간이 훨씬 짧아졌고, 창출된 잉여 시간은 정보통신

산업 등 새로운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렇게 인류 활동의 발자취를 정리해 보면

인류의 역사는 시간을 단축하는 일’, 바꿔 말해

시간의 빨리 감기에 가치를 둔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인류의 가치 판단 기준이 얼마나 두뇌에

편중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우리는 늘 육체적 부담을

최소화하며 최대의 성과를 얻고자 한다. 에너지를

얻으려는 뇌의 끝없는 욕구가 시간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시간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하나의 생물이라도 했을 때 인간의 시간은

이미 완전히 어긋나 있다. 지금보다도 훨씬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살도록 만들어진 몸과 그것과는 무관하게

그저 시간 단축에만 혈안이 된 극단적으로 비대해진 뇌

사이에서 말이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뇌 주도의

사고법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몸을 생각하는 사고법을

실현할 수 있을지를 분명히 의식해야 한다.

자신의 몸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인간의 심층

심리를 파악할 수만 있다면 시간 단축을 지향하는

생활 습관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좌선이나 요가, 달리기의 오랜 인기는

우리가 몸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려는 잠재적 욕구를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사회의 시간을

조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에너지 문제처럼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 요구되는 복잡한 문제는

흑백 논리식의 질문을 세상에 던져보았자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뇌가 주도하는 시간 인식 문제를 중심에 두고

몸이 내는 소리 없는 비명에 귀를 기울여 개인과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바꿔

나갈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시간 단축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에서 에너지

소비를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천천히 걷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발견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여행의 목적지

나아가야 할 미래

지금까지의 번영을 가능케 한 사고방식과

결별하고 자기 의지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꿈꾸는 미래의 모습을

다시 새롭게 상상해야 한다. 지금은 지향하는

새로운 여행의 목적지를 명확히 한 다음 목적지에

다다르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목적지의 설정은 현재 당연시되는 사고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다.

 

당연한 생각을 의심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만

2020년에 이를 쉽게 만든 큰 사건이 전 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바로 폭발적인 감염을 일으킨

코로나 바이러스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었고 직장에서는 재택근무가 강하게 권고되었으며,

학교는 오랜 시간 휴교에 돌입했다. 레스토랑이나 헬스장 등의

상업시설은 휴업하거나 시간을 단축해 운영되었고

전 세계 도시란 도시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졌다.

그렇게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이 갑자기

바뀌어 버렸다. 이렇듯 장기에 걸쳐 일상이 바뀌면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그 이전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상상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지금까지의 일상을 적극적으로 바꿀 기회의 싹이

움트고 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에게 여러 가지 깨달음을 주었다.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인류가 나아가야 할 에너지의

미래를 그리는 데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두가지

깨달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깨달음은 이번 감염 사태로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위기에 취약한 운명

공동체인가가 명백해졌다는 점이다. 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해 탄생한 세계적인 생산과 소비 네트워크는 감염에

너무나도 무력했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그렇게 세계는 대혼란에 빠졌다.

감염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은 국경을 봉쇄하고

외출 금지령을 발효하는 등 시민의 눈을 아랑곳 않고

사람의 이동을 전에 없는 수준으로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두 번째 깨달음은 이번 사태로 고사하지 않을까

우려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경제 활동이

마비되었음에도 감소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파리 협정의 목표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20204월과 5월의 급격한 경제 활동의 억제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 시기에

전 세계에서 행해진 반강제적인 매장 폐쇄, 각종 이벤트

중지는 매장 운영자나 이벤트 주최자에게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식사나 쇼핑, 이벤트를

자유로이 즐길 수 없게 된 일반 소비자에게도

정신적으로 큰 억압이 되었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쇼크

요법으로는 꾸준한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활동이 요구되는

기후 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 시사되었다.

이는 경제와 환경을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보고 어느

한쪽만 과도하게 우선해서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는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앞서 말한 과도한 집중화의 재검토, 경제 활동과

환경 보호의 균형 확보가 앞으로의 미래를 점치는 데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와 환경의 위치를

바꾸는 사고방식이야말로 코로나 이전의 당연함에서

탈피해 지속 가능한 사회로 이행 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실천할 수 있는 효과가 확실한 방법

뇌를 매개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몸이 움직이는

구체적이면서도 간단히 실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절약이다.

사실 절약만큼 누구나 실천하기 쉽고 에너지 소비량의 억제

효과가 큰 방법은 없다. 최근 들어 경제 활동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낭비를 허용하는 풍조가 있다.

그것은 자본의 신의 폭주를 용인하는 경제 성장

지상주의이므로 환경 보호와 경제 성장의 균형을

현저히 깨트리는 요인이다. 게다가 기존의 자본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원래 자본주의 정신이란 막스 베버가

밝힌 것처럼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바롯된 근면과

절약의 미덕이 바탕인 부의 창조다. 애초에 절약은

근면과 함께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실제로 절약은 매우 효과가 좋다. 절약을 에너지원의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물건을 오래 아껴 쓰고,

사용하지 않는 방의 불이나 에어컨을 끄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인다 이러한 낭비만 없애도 에너지 소비량

감축에 충분히 공헌하는 일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소고기를 먹다 남기는 일 따위는 벌이 내리는 일이니 절대 금지다.

 

물론 절약한다고 해서 일이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과도한 절약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절약이

앞으로의 시대를 사는 하나의 키워드라는 점은 명백하다.

또 오해하지 않게 덧붙이자면 여기서 말하는 절약이란

10원이라도 싼 것을 골라 사는 일에 집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본을 집약하고 대량 생산된 제품일수록 싸게 시장에

공급되므로 금전적인 절약에만 초점을 맞추면 자본의

신이 원하는 바대로 되고 만다. 절약 정신은 어디까지나

낭비를 멈추고 아깝다라고 생각하는 마음에 중점을 둬야 한다.

 

에너지의 대량 소비로 유지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철학적인 논의를 통해

뇌의 성찰을 유도하는 식의 굵직한 대안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서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소소한 대안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려는 태도나 아무렇게나 낭비하는

행동이 환경을 해친다고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이

그저 멋이 없는 일이 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류가 공업 제품을 만들기 위해 낮은 엔트로피

자원을 계속 소비하는 한 완전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사회는 도래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사회와

최대한 가까운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거듭 노력하고,

메울 수 없는 틈이 있다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자연의 도움을 받아 고치며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활동에 끝이란 없다. 부단한 개선이 있을 뿐이다.

이야말로 인류의 조상이 불을 얻은 이래 우리 인류를

공전의 번영으로 이끈 길이자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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